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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위

by summernightj 2026. 1. 13.

2025년~2026년 이란 시위(페르시아어: اعتراضات دی ۱۴۰۴ ایران→이란의 1404년 데이월 시위)는 2025년 말 테헤란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이란의 민중 봉기로,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체제의 안정성을 가장 심각하게 뒤흔든 사건 중 하나이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 상승과 리알화 가치 폭락 같은 경제적 파국이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이는 곧 종교 중심의 신권 통치와 실정에 맞서는 광범위한 체제 변혁 운동으로 이어졌다. 시장 상인들의 파업과 학생들의 참여로 동력을 얻은 이번 시위는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 이후 가장 강력한 결집력을 보여주었으며, 레자 팔라비를 지지하는 친군주제 세력의 부상과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 맞물리며 이란 사회의 깊은 갈등과 구조적 위기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2025년 12월 28일부터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과 심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란의 여러 도시로 대규모 시위가 터져 나왔다. 초기에는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 이란 리알화의 심각한 가치 하락에 대한 불만이 발단이 되었으나, 시위는 현 체제의 종식을 요구하는 더 넓은 운동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테헤란의 상점 주인들과 바자르 상인들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곧 대학교로 퍼져나갔고, 전국 각지의 수많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시위대는 반정부 구호뿐만 아니라 친군주제 구호를 외치며 집권층에 대한 불만과 폭넓은 정치적 요구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번 시위는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 이후 발생한 2022년 시위 이래 이란 최대 규모의 시위가 되었으며, 1월에는 1979년 혁명 이후 잠재적으로 최대 규모의 위협으로 성장했다.

이번 시위의 물결은 급격히 나빠진 경제 상황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플레이션이 2025년 10월 48.6%, 12월 42.2%까지 치솟으면서 가계 경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12월 29일에는 이란 리알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인 미국 달러당 145만 리알까지 떨어졌고, 1월 3일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138만 리알로 가치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1월 6일 리알화는 달러당 150만 리알로 다시 한번 최저치를 갈아치웠고, 이는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수년간 이어져 온 경제 위기는 2025년 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 그리고 핵 합의 위반 시 해제된 제재를 즉각 복원하는 '스냅백 메커니즘'으로 인해 다시 부과된 유엔의 핵 관련 국제적 제재 상황과 맞물려 있다.

초기 테헤란의 바자르 상업 지구를 중심으로 응집되었던 열기는 이스파한, 시라즈, 마슈하드 등 거점 도시들로 거세게 옮겨붙었다.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상인들이 당국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하며 전면적인 철시 파업에 돌입했으며, 온라인상에 유포된 영상들에는 보안군이 군중을 억누르기 위해 최루탄을 살포하는 긴박한 대치 상황이 포착되었다. 사태의 흐름이 거세짐에 따라 각지의 시민들은 "자유"를 부르짖으며 현 정권을 향한 선명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이는 체제 자체의 변화를 갈망하는 집단적 요구로 이어졌다.

2026년 1월 8일, 레자 팔라비가 이란 표준시 20시를 기점으로 전국적인 구호 제창을 독려하면서 시위의 기세와 외연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했다. 사태가 급격히 전개되자 이란 당국은 저항의 동력을 꺾기 위해 국가 전역의 인터넷 망을 폐쇄하고 전화 서비스마저 중단시키는 강도 높은 통신 차단 조치를 단행했다. 레자 팔라비는 시위 구호의 중심에 서 있으며 많은 시위자가 그의 이란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평화적 전환과 이란의 미래 정치 체제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거듭 요구해 왔다.